국가통일과 체제전환이란 과제는 숭고한 당위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적 권력의 문제이며, 감정적 민족의 문제라기보다는 경제적 효율의 문제이며, 관념적 이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체적 제도의 문제다. 우리의 통일문제가 정치적인 운동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적인 학문의 대상으로 냉정하게 재검토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독일통일과 중국개혁의 경험은 후발자인 우리에게 유용한 참고서
이 책에서는 독일통일과 중국개혁의 전 과정에 있어서 체제전환의 문제와 연관된 헌법적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정녕 필요한 것은 조속한 통일이 아니라 안전한 통일, 저렴한 통일, 편리한 통일이라고 판단하는 한, 독일과 중국의 국가통일·체제전환 경험은 후발자인 우리에게 대단히 유용한 참고서가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독일통일의 여러 측면들을 국가학 방법론을 동원하여 유형화하고(1장), 동·서간 생활실질의 균등화라는 키워드를 헌법이론적 관점에서 해명한 후(2장), 법치국가적 통일이 초래한 각 측면의 비용·수익을 분석하였다(3장). 제2부에서는 중국개혁의 진행과정을 헌법개정의 추이라는 측면에서 개괄한 후(4장),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에 상응한 헌법상 소유제구조의 개혁문제를 분석하고(5장), 체제전환에 상응한 사법제도의 개혁문제와 위헌심사제도의 개선논의를 정리하였다(6장·7장). 마지막 제3부에서는 독일통일과 중국개혁을 각각 ‘제도전이’ 모델과 ‘제도점이’ 모델로 유형화하여 서로 비교하였다(8장).
* ‘정경(政經)동시·급속·제도전이’의 독일모델은 참고사례로 여전히 유용
이 책에서 필자는 독일식의 모델을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시장화·사유화를 동시에, 급속도로, 외부적 제도이식의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유형화하였다. 최근 몇몇 논자들은 독일식 흡수통일의 막대한 비용부담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지만, 독일의 통일비용이란 동·서간 생활수준의 급속한 접근을 추진한 데 수반한 ‘동화비용’이지 통일 그 자체에 직접 기인한 비용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오히려 독일식 모델을 특징짓는 제1의 요소는 그 국제정치적 의존성에 기인한 통일과정에서의 ‘시간적 압박’에 있다고 필자는 결론짓고 있다. 우리 남북관계의 국제정치적 의존성 역시 독일의 그것에 못잖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독일통일은 남북통일의 참고사례로 여전히 유용할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하고 있다.
* ‘경제우선·점진·제도성장’의 중국모델 은 제한적으로만 응용 가능
한편, 필자는 중국식의 모델을 공산당독재를 유지하면서 시장화·사유화를 우선적으로, 점진적 제도성장의 방식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유형화하였다. 중국의 경우는 체제전환의 과정에서 그 ‘국가적 다층성’을 활용하여, 전환비용을 시간적·공간적으로 분산하였다는 데 주요 특징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여 최근에는 사법부문·입법부문으로 제도개혁의 압력이 점차 전이·가중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 중국식 모델은 공업화·국가화된 ‘단층적 국가특성’에 비추어 북측의 상황에는 적용하기 곤란한 면이 있음을 필자는 지적하였다. 그리고 만일 개혁·개방 이후 체제의 안정화에 성공한 북측정권이 중국처럼 개발독재의 길로 나아가는 경우, 남과 북 두 체제는 다시금 장기간의 현상유지상태(status quo)로 진입하게 될 가능성이 있음을 또한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