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신과 감성을 인위적으로 왜곡하고 통제한 일본문학보국회의 설립과 활동에 대해 면밀하게 다룬 보고서
일본문학보국회는 일제시대 설립되어 언론의 통제기관으로 군림했다. 더 정확히는 인간의 정신과 감성을 인위적으로 왜곡하고 통제하기 위해 검은 손들이 작동하고 있던 곳이 일본문학보국회였다. 이 책은 일본문학보국회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활동에 대한 보고서이다. 일제 말기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광란의 질주에 동승한 일본 언론과 문화인들의 행태에 대한 치밀한 자료 분석과 고증을 통해 전쟁의 뿌리를 파악해 내고 있다. 언론이 ‘여론’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 권력이 어떻게 개입하고 여론을 조작했는지, 그리고 그런 여론이 제동장치 없이 미친 듯이 질주하는 기차에 편승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진실에서 먼 이야기조차도 잘못된 시대에는 마치 그것이 정의이고 선인 것처럼 왜곡되는 현실을, 언론이 어떻게 주도해 갔는지를 밝힘으로써 전쟁이 가져오는 물질적 피폐함을 넘어 정신적 피폐함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특히 일본문학보국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문인보국회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역할에 대해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거울이 될 것이다.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여론조작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문학인을 포함한 지식인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추적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쇼와 초기의 세상의 흐름, 그 흐름에 농락당한 문사들의 행동을 뒤돌아봄으로써 정치나 군대의 힘만으로 전쟁이 일어나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매스컴에 의한 여론 조작, 거기에 협력하는 문화적 세력이 어떤 모양으로 전쟁을 지탱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일까”를 살펴보고 있다. 이를 위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서를 기술하듯, 그러나 역사서가 기술하지 못하는 인간의 내밀한 감정에까지 촉수를 가져가는 저자의 감각은 놀랍다. 그 결과 태평양전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계속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바탕하여 전쟁의 길목길목에서 문학인과 언론을 포함한 문화인들이 어떤 포즈를 취했는지를 맨얼굴로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역사 현장 속에서 자신의 이성적 양심을 지키며 저항한 사람들과 ‘잘못된’ 역사를 만드는데 일조하거나 방조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다룸으로써, 당시 지식인들이나 문화인들이 전쟁시대에 행한 행동보다 내면에 깃든 생각까지 물질해 올리는 저자의 수법은 탁월하다.
태평양전쟁기 일본 문단의 흐름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기술
작가 오카다 사부로가 노구치 후지오의 집을 방문하는 에피소드로 시작되는 이 책은 태평양전쟁기 일본 문단의 흐름을 매우 다양한 문인들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치밀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전쟁은 죽음, 폐허, 전사자 수,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이 책은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소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재현해 보여주는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또한 일본문학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이 빈번히 오르내리지만 그 이름들이 조합해내는 정치·문화적 역학 관계를 읽어낸다면 그 또한 ‘낯선’ 재미일 것이다.
문학자들의 전쟁 책임에 대한 경중을 가리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
광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태평양전쟁 동안 저지른 범죄 행위를 역사와 인류의 이름으로 단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 교쿠온방송에서 떨리는 목소리와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패전을 선언하던 쇼와천황과 그 추종자들이 있다. 할복자살을 한 고이즈미 치카히코, 음독 자살을 한 고노에 후미마로·하시다 쿠니히코, 극동국제군사재판을 통해 사형을 당한 도죠 히데키·히로타 코키 등에 대해 전쟁 책임을 묻고 있다. 그리고 “인민의 혼이어야 할 문학자로서 오히려 침략 권력의 메가폰이 되어 인민을 전쟁 속으로 억지로 몰아넣고, 기만과 영합으로써 지배자의 염치없는 하녀가 된 자, 특히 그 선두에 섰던 자”인 문학자들의 전쟁 책임에 대한 경중을 가리는 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은 명쾌하게 제시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