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
고대에 ‘요동’으로 불린 만주지역은 한국 역사의 무대이면서 중국의 변경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韓中관계사 분야에서는 가장 주목해야 할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 189년부터 238년까지 50년 동안 공손씨를 주축으로 하는 정권이 설립 유지되었다. 공손씨정권은 3대를 통해 세습되었고, 정권의 창립자 또한 ‘王’을 자칭한 만큼 ‘왕국’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동왕국 50년의 역사는 ‘요동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중국사와 시대사의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왕국은 여명기에 있던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에 비해 요동왕국에 관한 연구는 논문 몇 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의 역할을 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
저자는 요동지역의 역사가 갖는 특성으로서 ‘夷人(非漢族, 이민족)’의 중요성과 혼란과 분열의 시대를 맞아 요동지역은 중국이 아닌 ‘海外(외국)’로 인식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해외’로의 인식은 요동의 자의적 판단만이 아니라 중국(왕조)의 위정자들조차 공유하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내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東北工程이 진행되는 시점에선 이에 관한 반박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과 분리된 상태에서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으로 역할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중국사에서 영토와 주민이 분리․이탈의 단계를 거쳐 다시 제국의 一員으로 귀속․통합되는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요동왕국에 관해 연구한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
요동왕국을 검토하기 위한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것은 사료를 기록한 주체가 한결같이 황제 주변에 있던 官僚史家들이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된 내용도 생략, 폄하, 축소된 부분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사료의 성격을 주목하여 기록의 표면적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공손씨는 지방세력일 뿐 아니라 나중엔 반란집단으로까지 인식되는데, 이들에 대해 “威勢를 해외에 떨쳤다(威行海外)”라고 표현하였다면 그 실제의 위상은 어떠하였을지 세밀하게 추론하였다. 지금까지 요동왕국에 관해선 한․중․일 삼국을 망라하여 독립된 저술의 형태로 출판된 예가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이다. 또한 저자는 한문으로 된 모든 사료를 풀어서 읽기 쉬운 문장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원사료를 인용해야 할 부분에서도 가급적 한자의 사용을 자제하는 등 전문학술서이지만 일반교양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