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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요동왕국과 동아시아

"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

지은이권오중

출판일2012.08.20

쪽 수295

판 형신국판

I S B N978-89-7581-452-5 93910

판매가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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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
고대에 ‘요동’으로 불린 만주지역은 한국 역사의 무대이면서 중국의 변경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韓中관계사 분야에서는 가장 주목해야 할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 189년부터 238년까지 50년 동안 공손씨를 주축으로 하는 정권이 설립 유지되었다. 공손씨정권은 3대를 통해 세습되었고, 정권의 창립자 또한 ‘王’을 자칭한 만큼 ‘왕국’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동왕국 50년의 역사는 ‘요동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중국사와 시대사의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왕국은 여명기에 있던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에 비해 요동왕국에 관한 연구는 논문 몇 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의 역할을 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
저자는 요동지역의 역사가 갖는 특성으로서 ‘夷人(非漢族, 이민족)’의 중요성과 혼란과 분열의 시대를 맞아 요동지역은 중국이 아닌 ‘海外(외국)’로 인식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해외’로의 인식은 요동의 자의적 판단만이 아니라 중국(왕조)의 위정자들조차 공유하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내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東北工程이 진행되는 시점에선 이에 관한 반박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과 분리된 상태에서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으로 역할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중국사에서 영토와 주민이 분리․이탈의 단계를 거쳐 다시 제국의 一員으로 귀속․통합되는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요동왕국에 관해 연구한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
요동왕국을 검토하기 위한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것은 사료를 기록한 주체가 한결같이 황제 주변에 있던 官僚史家들이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된 내용도 생략, 폄하, 축소된 부분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사료의 성격을 주목하여 기록의 표면적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공손씨는 지방세력일 뿐 아니라 나중엔 반란집단으로까지 인식되는데, 이들에 대해 “威勢를 해외에 떨쳤다(威行海外)”라고 표현하였다면 그 실제의 위상은 어떠하였을지 세밀하게 추론하였다. 지금까지 요동왕국에 관해선 한․중․일 삼국을 망라하여 독립된 저술의 형태로 출판된 예가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이다. 또한 저자는 한문으로 된 모든 사료를 풀어서 읽기 쉬운 문장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원사료를 인용해야 할 부분에서도 가급적 한자의 사용을 자제하는 등 전문학술서이지만 일반교양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차례

머리말 : ‘요동왕국’이란? 
 
제1부 요동왕국의 성립 
1장. 요동돼지遼東豕의 유래  
요동의 지리와 주민 
요동군의 위치문제 

2장. “나는 요동왕遼東王” - 공손탁의 집권과정 
공손탁과 요동태수 
공손탁의 무단통치 
“요동왕” 공손탁 
 
3장. 요동왕국의 체제  
요동지역의 개편 
‘평주목平州牧’으로서의 자립  
요동왕국의 관제  
 
제2부 요동왕국과 동아시아세계 
4장. ‘해외海外’와 요동  
‘해외’로서의 요동
‘소중화小中華’ 요동왕국 
 
5장. 공손씨의 해외海外 경영과 동아시아세계 
삼국지의 기록 
요동의 동력 
동이지역 군郡의 개편
대방군 설치 
“웅장해동雄張海東”의 실상 
 
제3부 요동왕국과 중국제국 
6장. 요동왕국과 한漢·위魏 
중국왕조와 요동의 국경 
한漢・위魏의 요동 책봉冊封  
중원과 요동의 왕래 
동북의 첨병尖兵 유주자사幽州刺史
 
7장. 공손연의 외교와 손오孫吳 
공손연의 집권 
요동과 오吳의 외교 
 
8장. 요동왕국의 멸망과 제국으로의 귀속 
관구검의 요동 원정 
사마의司馬懿의 원정과 요동왕국의 멸망  
위 왕조의 요동 접수와 동이 
 
맺는말 : 요동왕국이 남긴 것 
 
주석  
부록 
찾아보기  
 

 

 

책속으로

동이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요동왕국이 존속한 반세기의 기간 동안 중원왕조가 아닌 요동왕국에 조공하였을 것이다. 황제 중심의 기록을 작성할 수밖에 없는 궁정사가宮廷史家들로선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침묵하였다. 그렇지만 이들도 공손씨가 ‘해외’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선 “웅장해동雄張海東”이니 “위행해외威行海外”니 하여 최고의 수사를 구사하였다. 그 정도로 요동왕국이 해외에서 수행한 역할이 적극적이면서도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현도와 낙랑 그리고 대방군은 요동왕국의 하부 기구로서 작동하였다. 요동 그리고 그 하부 군현의 역할에 힘입어 군현과 동이 그리고 동이제국 사이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활발한 교류가 전개되었다. 『삼국지』동이전이나 『위략』에는 앞 시대의 사서에서 볼 수 없던 동이제국의 습관이나 풍속 생활 등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이 보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요동왕국의 선도 아래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의 결과일 것이다. 종주국인 요동왕국의 영향 아래 중국의 문자와 제도 문물 등 고대의 중국문화가 한반도 남부 및 일본열도에까지 한층 활발하게 보급될 수 있었다. 낙랑군 개설에 뒤이어 요동왕국 시기를 ‘고대 동아시아세계’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계기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 권오중
1947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위논문 제목은 「明末書院考」(석사), 「낙랑군을 통하여 본 고대 중국 ‘內屬郡’의 성격」(박사)이다.
세종대학교 역사학과를 거쳐 1984년부터 2012년 2월까지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재직하였다.
현재는 위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樂浪郡硏究』(1992), 『한중관계 2000년 ‐동행과 공유의 역사 ‐』(2008 공저), 『낙랑군 호구부 연구』(2010 공저) 『한중관계사상의 교통로와 거점』(2011 공저) 등이 있다.

 

 

서평

책소개

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
고대에 ‘요동’으로 불린 만주지역은 한국 역사의 무대이면서 중국의 변경지역이기도 하다. 때문에 韓中관계사 분야에서는 가장 주목해야 할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 189년부터 238년까지 50년 동안 공손씨를 주축으로 하는 정권이 설립 유지되었다. 공손씨정권은 3대를 통해 세습되었고, 정권의 창립자 또한 ‘王’을 자칭한 만큼 ‘왕국’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요동왕국 50년의 역사는 ‘요동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중국사와 시대사의 모습도 보여준다. 또한 왕국은 여명기에 있던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요동왕국의 역사는 만주지역을 비롯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중요성에 비해 요동왕국에 관한 연구는 논문 몇 편에 불과한 실정이다.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의 역할을 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
저자는 요동지역의 역사가 갖는 특성으로서 ‘夷人(非漢族, 이민족)’의 중요성과 혼란과 분열의 시대를 맞아 요동지역은 중국이 아닌 ‘海外(외국)’로 인식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해외’로의 인식은 요동의 자의적 판단만이 아니라 중국(왕조)의 위정자들조차 공유하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내용이다. 특히 현재와 같은 東北工程이 진행되는 시점에선 이에 관한 반박 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과 분리된 상태에서 요동왕국은 동이(東夷)세계에서 宗主된 자격으로 역할하였고, ‘고대 동아시아세계’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중국사에서 영토와 주민이 분리․이탈의 단계를 거쳐 다시 제국의 一員으로 귀속․통합되는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요동왕국에 관해 연구한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
요동왕국을 검토하기 위한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것은 사료를 기록한 주체가 한결같이 황제 주변에 있던 官僚史家들이었던 때문이다. 따라서 기록된 내용도 생략, 폄하, 축소된 부분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사료의 성격을 주목하여 기록의 표면적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공손씨는 지방세력일 뿐 아니라 나중엔 반란집단으로까지 인식되는데, 이들에 대해 “威勢를 해외에 떨쳤다(威行海外)”라고 표현하였다면 그 실제의 위상은 어떠하였을지 세밀하게 추론하였다. 지금까지 요동왕국에 관해선 한․중․일 삼국을 망라하여 독립된 저술의 형태로 출판된 예가 없었다. 따라서 이 책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초의 전문서이다. 또한 저자는 한문으로 된 모든 사료를 풀어서 읽기 쉬운 문장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원사료를 인용해야 할 부분에서도 가급적 한자의 사용을 자제하는 등 전문학술서이지만 일반교양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차례

머리말 : ‘요동왕국’이란? 
 
제1부 요동왕국의 성립 
1장. 요동돼지遼東豕의 유래  
요동의 지리와 주민 
요동군의 위치문제 

2장. “나는 요동왕遼東王” - 공손탁의 집권과정 
공손탁과 요동태수 
공손탁의 무단통치 
“요동왕” 공손탁 
 
3장. 요동왕국의 체제  
요동지역의 개편 
‘평주목平州牧’으로서의 자립  
요동왕국의 관제  
 
제2부 요동왕국과 동아시아세계 
4장. ‘해외海外’와 요동  
‘해외’로서의 요동
‘소중화小中華’ 요동왕국 
 
5장. 공손씨의 해외海外 경영과 동아시아세계 
삼국지의 기록 
요동의 동력 
동이지역 군郡의 개편
대방군 설치 
“웅장해동雄張海東”의 실상 
 
제3부 요동왕국과 중국제국 
6장. 요동왕국과 한漢·위魏 
중국왕조와 요동의 국경 
한漢・위魏의 요동 책봉冊封  
중원과 요동의 왕래 
동북의 첨병尖兵 유주자사幽州刺史
 
7장. 공손연의 외교와 손오孫吳 
공손연의 집권 
요동과 오吳의 외교 
 
8장. 요동왕국의 멸망과 제국으로의 귀속 
관구검의 요동 원정 
사마의司馬懿의 원정과 요동왕국의 멸망  
위 왕조의 요동 접수와 동이 
 
맺는말 : 요동왕국이 남긴 것 
 
주석  
부록 
찾아보기  
 

 

 

책속으로

동이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요동왕국이 존속한 반세기의 기간 동안 중원왕조가 아닌 요동왕국에 조공하였을 것이다. 황제 중심의 기록을 작성할 수밖에 없는 궁정사가宮廷史家들로선 이러한 사실에 대해 침묵하였다. 그렇지만 이들도 공손씨가 ‘해외’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선 “웅장해동雄張海東”이니 “위행해외威行海外”니 하여 최고의 수사를 구사하였다. 그 정도로 요동왕국이 해외에서 수행한 역할이 적극적이면서도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현도와 낙랑 그리고 대방군은 요동왕국의 하부 기구로서 작동하였다. 요동 그리고 그 하부 군현의 역할에 힘입어 군현과 동이 그리고 동이제국 사이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활발한 교류가 전개되었다. 『삼국지』동이전이나 『위략』에는 앞 시대의 사서에서 볼 수 없던 동이제국의 습관이나 풍속 생활 등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이 보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요동왕국의 선도 아래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의 결과일 것이다. 종주국인 요동왕국의 영향 아래 중국의 문자와 제도 문물 등 고대의 중국문화가 한반도 남부 및 일본열도에까지 한층 활발하게 보급될 수 있었다. 낙랑군 개설에 뒤이어 요동왕국 시기를 ‘고대 동아시아세계’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계기로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 권오중
1947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위논문 제목은 「明末書院考」(석사), 「낙랑군을 통하여 본 고대 중국 ‘內屬郡’의 성격」(박사)이다.
세종대학교 역사학과를 거쳐 1984년부터 2012년 2월까지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에 재직하였다.
현재는 위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저서로는 『樂浪郡硏究』(1992), 『한중관계 2000년 ‐동행과 공유의 역사 ‐』(2008 공저), 『낙랑군 호구부 연구』(2010 공저) 『한중관계사상의 교통로와 거점』(2011 공저) 등이 있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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