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기업가의 사회적 영향력과 역할, 기업가와 사회의 복합적인 관계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고찰한 결과물
이 책은 기업사 중에서도 기업가들이 구상한 ‘사회적 유토피아’의 비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들은 기업가들을 단순히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로 보는 통념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기업 활동에 깔려 있는 다양한 ‘비경제적’ 동기들, 특히 ‘사회적’ 비전에 주목하였다.
기업가는 무엇을 위해 활동하는가의 문제에 천착하여 그들이 새로운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발전 모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기업 안팎에서 가치체계에 대한 문화적 합의를 확보하는 과정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유토피아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저자들은 사상가들만이 유토피아를 독점한 것은 아니며 기업가들도 중요한 유토피아의 생산자들이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기업가는 새로운 미래 사회의 원리를 선전함으로써 지식인과 유사한 기능을 자처하기도 한다. 다만 지식인과는 달리 기업가는 자신의 사회적 비전을 경제 활동과 결합시켜 실천에 옮겼다. 그러므로 기업가의 경우에는 책이 아니라 실천 자체가 텍스트가 된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실천은 많은 경우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으며, 기업가에게 유토피아인 것이 노동자에게는 끔찍한 디스토피아이기도 했다.
하지만 때때로 유토피아는 기업의 성공 신화를 창조하여 기업가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나아가 한 사회의 문화적 기호 체계를 혁명적으로 뒤바꾸기도 했다. 실패한 경우라도 기업가들의 꿈과 야심은 후대에 변형된 형태로 현실이 되거나, 최소한 낡은 문서와 희미한 사진, 그리고 기억으로 남아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각 국의 기업과 기업가들을 역사학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기업가의 유토피아에 대한 연구는 기업사의 전통적 패러다임인 챈들러의 시각을 수정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크다.
기업가의 유토피아에 대한 연구는 기업사의 전통적 패러다임인 챈들러(Alfred D. Chandler, Jr.)의 시각을 수정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크다. 챈들러는 주로 기업 내부 구조에 치중하여 기업과 사회의 역동적 관계를 간과했다. 그러나 기업은 사회적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기업을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발전한다. 나아가 기업은 시장 거래의 기능을 내부화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능까지 흡수하고 있다.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사회적 기능, 그러니까 노사 갈등을 예방하는 사회 복지의 기능이나 공공성을 담보하는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 기능 등을 기업 내부로 흡수하는 것이다. 또한 기업들은 사회적 환경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선도하는 능동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가들은 항상 사회 발전 모델을 설계하고 축조해왔다는 사실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등 서양 7개국의 기업과 기업가를 엄선하여 성장과정과 경영적 특성, 사회구조적 배경, 그들이 제시한 독특한 사회적 비전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기업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매우 중요
국내에서 기업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지만 이미 서양 학계에서는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현대 역사학의 한 장르다. 20세기 자본주의 세계에서 기업이 단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도임을 고려하면, 기업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주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기업사 연구는 주로 경영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다루어져왔지, 역사적 안목에서 연구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관점에서 서양 7개국의 기업과 기업가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한 이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 나아가 역사 속에서 인간 개인의 주관적 모습과 정신을 다루는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경제 경영학, 사회학, 심리학, 공학 등 비역사학 분야와 소통하고 발전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다.
서양 7개국의 기업과 기업가들의 성장과정과 경영적 특성, 사회구조적 배경, 그들이 제시한 사회적 비전들을 고찰
1장에서는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가 구상한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의 비전을 살피고 있다. 그가 생산의 합리화와 노사 협력, 생활수준의 향상에 기초하여 제시한 “자본주의적 유토피아”의 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영국의 모리스 모터스(Morris Motors)를 통해 영국식 기업 문화의 특징을 일별하고, 3장에서는 독일의 대표적 기업가 지멘스(Werner von Siemens)의 사례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을 협상 주체로 인정하여 안정적인 노사 관계의 틀을 만들어내려고 한 그의 사회적 비전을 고찰하였다. 4장과 5장에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Fiat)와 르노(Renault)의 사례를 통해 최고경영자들의 사회적 비전과 그것이 구현된 독특한 기업 문화를 검토하고 있다. 6장에서는 스페인의 독특한 협동조합 기업체인 몬드라곤(Mondragón)의 사례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부에서 실현한 과정을 살펴보았다. 7장에서는 러시아의 독특한 사회적, 종교적 배경에서 탄생한 사적 기업의 성장 과정과 기업 문화의 특성을 가늠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