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명한 동서비교 철학자인 로저 에임즈(Roger T. Ames) 교수의 The Art of Rulership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중국 고대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에임즈 자신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연구물이다. 정치와 관련된 개념들을 역사적 근원과 발전과정을 통해 밝힌, 한마디로 정치 개념의 계보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념의 연원을 단순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가, 도가, 법가의 복잡한 사상들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하면서 당시 정치 체제와 실정에 비추어 실행 가능한 정치적 안案에 대한 타당성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저작물이다.
저자가 주 자료로 택한 『회남자』의「주술」편은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과 정치 이념들의 물줄기가 하나로 모여든 하구河口와 같은 저작이다. 에임즈 교수는 이 문헌 속의 무위無爲, 세勢, 법法과 같은 정치 개념들이 어떻게 절충되고 조화되는지 각 정치 시스템의 내적 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오늘 날 지향해야할 올바른 정치적 방향과 신념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개연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권한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제자백가의 철학은 성격상 현실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
중국 고대 춘추전국 시대는 수많은 사상과 이론이 난무했던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당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사상과 이론들이 나왔는데, 이를 제자백가라고 부른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제자백가의 철학은 성격상 현실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군주의 덕성을 강조하느냐, 법과 제도를 중시하느냐에 차이는 있지만, 각 제후국이 처한 상황과 특수성을 감안하여 존망의 필법으로 다양한 정치 이념이 제시되었고 각국의 실정에 맞게 채택되고 수정되었다는 점에서 제자백가의 철학은 당시 현실 정치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주고 있다.
『회남자』의 「주술」편을 중심으로 중국의 고대철학을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탐색
백가百家의 사상은 진의 통일을 계기로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지만,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B.C.179-122)의 저작으로 알려진『회남자』에 제자백가들이 제시한 다양한 정치적 입안들과 사상적 편린들이 화석의 파편처럼 오롯이 박혀있다. 『회남자』는 중국 철학의 형성기인 선진 시대 다양한 학파의 철학과 정치적 신념들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각 사상들이 서로 통섭되는 과정과 그 후 새롭게 정립된 정치형태의 일면까지 볼 수 있는 종합적인 성격을 갖추고 있다. 에임즈 교수는『회남자』의 「주술」편을 중심으로 중국 고대철학의 원형적 파편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하여 해석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물이 본 저서『중국 고대 정치철학』이다.
고대 중국 정치에서 사용된 개념들의 역사적 근원과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분류 분석
이 책의 원제는 The Art of Rulership으로 중국 고대 유가, 도가, 법가 등 다양한 학파의 사상을 통해서 당시 사회문제와 현실정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고대 중국 정치에서 제기된 중요한 개념들의 역사적 근원과 변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분류 분석하여 그들의 사상적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개념들 간의 공통점을 추출하여 서로의 영향과 상호 교류에 대한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각 시대별 정치상황과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역학관계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특정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정치이론으로 발전할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다.
각 학파들이 내세운 정치사상의 개념들이 어떻게 흡수, 통합되는지에 세밀하게 추적
중국 고대 정치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이 주로 학파나 시대에 국한된 연구인데 비해 이 책은 각 학파들이 내세운 정치사상의 개념들을 비교 분석하는 공시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이들의 개념들이 어떻게 흡수, 통합되는지에 대한 통시론적 접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또한 정치뿐만 아니라 역사나 사상들에 대해서도 풍부한 자료를 온장하고 있기에 인문학의 학제적인 연구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고대의 사상과 세계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치와 문화의 심층 요소들을 탐구
<제1장. 역사철학>은 유가, 도가, 법가, 회남자, 그리고 주술의 역사관을 차례로 펼쳐 보이고 있다. 저자는 유가, 도가 그리고 법가의 대표적 인물들이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철학적 관심사를 발견해 낼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제2장. 무위無爲>에서는 논어, 도덕경, 그리고 법가 문헌에 나타난 무위 개념의 발전과정을 밟아 이들 개념 간의 차이를 밝히고 각 학파 간의 철학적 특징을 도출하고 있다. 이 개념들이 어떻게「주술」에서 상호 결합되어 절충되는지에 대한 사상적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제3장. 세勢>는 고대 중국의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다. 병가를 비롯해서 순자와 법가 계열인 한비자 그리고 주술에 이르기까지 세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정치이론 및 전략 전술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군주와 신하들 간의 세를 단지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느냐,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군주의 통치력의 조건으로 삼느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필자의 예봉이 발휘되고 있다.
<제4장. 법法>에서는 법과 관련된 개념을 중심으로 도가, 유가, 법가 그리고 주술에 나타난 여러 관념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법은 법가와 뗄 수 없는 용어이지만, 도가, 유가에서도 제도와 통치수단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정치철학에서 보편적인 법과 수단으로서의 법의 역할, 그리고 법과 형刑을 대하는 통치자의 입장에 대한 학 학파의 차이를 논하고 있다.
<제5장. 용중用衆>에서 필자는『여씨춘추』와『한비자』에서 백성들의 집단적이고 일치된 힘을 이용하는 용중用衆개념을 다루고 있고,「주술」의 정치이론에서 그 함의와 역할을 이와 관련시켜 규명하고 있다.
<제6장. 이민利民>에는 「주술」의 정치이론에서 백성들의 안녕을 최우선시 하는 정책을‘이민利民’이라고 하지만, 「주술」의 해석 방향을 정하기 위해 이 개념(利民)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기에 앞서 철학적 차원을 먼저 짚어보고 있다. 통치자가 백성의 이익을 위한 정책들이 그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통치적 전략을 위한 포석인가를 대비시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