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정화(鄭和)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2세기 중국의‘서양’인식을 보여주는 선구적인 저서
『제번지(諸蕃志)』는 중국 북송 조여괄(趙汝适, 1170~1128)이 지은 책으로, 역자는 1937년 풍승균(馮承鈞)이 교주(校注)한 것을 저본으로 번역하였다. 『제번지(諸蕃志)』는 15세기 정화(鄭和)의 ‘대항해’시대를 이끈 책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12세기 중국의‘서양’인식을 보여주는 선구적인 저서이다. 중국 이외의 해국(海國)들에 대한 최초의 전문적인 기술이 담겨 있는데 고려와 일본을 비롯해 남중국해에서 페르시아만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왕국들의 풍습, 산물, 여정들을 다루고 있다. 조여괄은 역대 사서(史書)들을 비롯한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하였고, 직접 제거복건로시박(提擧福建路市舶)으로 있으면서 탐문한 것을 바탕으로 기술한 책이다.
44개국으로 가는 여정과 지리적 환경, 풍습, 복식, 종교, 토산품, 교역 방식 등을 자세하게 기록
조여괄은 단순하게 사서(史書)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선별하고 정리하였다. 자신이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기에 당시‘서양’에 대한 중국의 인식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게다가 모두 44개국(표제로 제시된 왕국들만)으로 가는 여정과 지리적 환경, 풍습, 복식, 종교, 토산품, 교역 방식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2권에서 다루고 있는 47개 항목의 해국 산물에 대한 기록들은 상당히 권위 있는 문헌 자료를 참고하고 있기 때문에 외래 산물의 유래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이전의 문헌에서 발췌한 것이지만, 산견 되는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고, 직접 외국 상인들을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역자는 풍승균의 주석을 뛰어넘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바다를 통한 동서양 문물교역 연구의
토대를 마련
조여괄의 『제번지』는 20세기 초 록힐과 히어트가 이미 역주하여 출판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책이다. 하지만 1937년 폴 펠리오에게 수학한 풍승균이 원문을 교감하고 주석한 이래 중국에서 조차 보다 개진된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조선은 많은 동남아시아의 왕국들과 교역하며 문물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기에 역사, 문화, 동식물학, 약재, 향료 등에 있어 여러 학문적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역자인 박세욱 선생은 위의 두 선행 작업을 토대로 원문 교열과 번역뿐만 아니라, 풍승균의 주석을 뛰어넘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모름지기 바다를 통한 동서양의 문화교류, 문물교역 연구의 토대를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동남아시아, 아랍세계와의 교류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학문적 통섭과 지역 특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