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대구의 문학가와 음악가는 매일 중구 향촌동 등 시내에 모여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이러한 생활상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서울의 문화예술인들이 대구로 피란을 오면서부터 비롯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매일 술집과 다방(사랑방 역할)에 모여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예술창작에 고민하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는 대구시민들 대부분이 야당의 성격에 호응하고 동참했으므로, 이러한 시기에 1960년 4·19혁명은 큰 주제거리로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대구의 문학인과 음악인이 힘을 합쳐 문학가는 시를 짓고 음악가는 곡을 붙여 발표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해서 대구관현악단 반주로 공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작사한 6명은 모두 대구지역에서 활발히 시(詩) 창작을 하는 시인들이었고, 작곡한 5명은 대구에서 주도적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음악가들이었다. 작곡한 5명은 모두 대구관현악단과 직접적으로 깊게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시간에 작곡이 가능하였다. 전문작곡가는 아니었지만 연주활동을 많이 한 음악가들이었기 때문에 작곡을 할 수 있었다.
대구시인이 시를 짓고 대구음악가가 작곡하고 대구성악가가 노래한 4·19혁명가요는 모두 6곡이다. 신동집 작사 하대응 작곡 신경진 노래 "빛나던 사월”, 전상렬 작사 안종배 작곡 남정희 노래 "하늘이 안다”, 박훈산 작사 박기환 작곡 백남영 노래 "민주전사”, 김장수 작사 백남영 작사 백남영 노래 "아! 4·19”, 서정희 작사 이기홍 작곡 신경진 노래 "사월은 진달래”, 이민영 작사 안종배 작곡 신경흥 노래 "사월의 꽃”이었다. 한편 "아! 4·19”는 이미 그해 5월 29일자(4) 대구매일신문 일간지에 "4·19의 노래”로 작곡되어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