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나 바다를 통해 삶을 영위하는 민족을 지칭하는 ‘도이(島夷)’라는 표현은 글자 의미 그대로 ‘섬의 오랑캐’란 의미로 ‘중화사상’에 찌든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의 관습적 사용은 과거 중국인들이 이들을 정복과 교화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중국 중심의 우월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소통과 교류의 차원이 아닌 이러한 적대 의식은 결국 ‘아편전쟁’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략(誌略) 또는 지략(志略)의 ‘지’는‘역사적 기록’을 의미하므로, ‘지략’이란‘ 간략한 역사적 기록’을 말한다.”
“왕대연의 『도이지략』은 이미1869년 아더웨일리(Arthur Wylie, 1815~1887)가『중국문헌 해제(Notes on Chinese Literature)』에서 언급되었고, 중국의 남해 지리에 조예가 깊었던 흐루너펠트(Groeneveldt,1841~1915)는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1876년 『말레이군도와 말라카(Notes on the Malay Archipelage and Malacca)』에서 언급했었다. 브레트슈나이더(E. Bretschneider, M. D., 1833~1901)는『중세연구(Mediaeval Researches)』(II, 1888, 307~8쪽)에서 처음으로 천방(天方,메카) 조목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프랑스의 오루쏘(Léonard Aurousseau,1888~1929)는 조르주 마스페로(Geroges Maspero, 1872~1942)의 『참파왕국(Le Royaume de Champa)』에관한서평을쓰면서점성(占城, 참파), 민다랑(民多郞), 빈동룡(賓童龍), 일려(日麗) 등 4개 조목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BEFEO』, 1914, 8~43쪽). 페랑(Gabriel Ferrand, 1864~1935)은 스리비자야 왕국을 연구하면서 『도이지략』의삼불제(三佛齊), 구항(舊港) 두 조목을 불어로 소개했다.”
“[나라는] 감마라화(闞麻羅…華)의 동남쪽에 있고 바위산이 대치하고 있다. 사람들은 산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어, 먹을 것이 적고 대부분 참마[薯]1)를 심는다. 기후는 항상 덥고, 봄에만 약간 춥다. 풍속은 정직하다. 남녀는 머리를 땋아 머리를 [천으로] 감고 가늘고 붉은 베로 묶는다. 혼인을 매우 중시하여 태어나기도 전에 인연을 맺는[指腹] 경우가 많다. 온 나라가 의리를 지켜, 믿음을 저버린 자가 있다면 2냥의 금으로 처벌하고 그 국주에게 바친다. 사람들은 바닷물을 끓여 소금
을 만들고, 야자즙, 고사리 뿌리 가루[蕨粉]를 발효시켜 술을 만든다.2) 추장이 있다. 주석[花斗錫], 납, 녹모구(綠毛狗)3)가 난다. 교역하는 상품은 서양포(西洋布)4), 청백의 처주 자기, 기와, 항아리, 쇠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