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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904-1910년의 대구이야기 : 대구물어(大邱物語)

지은이가와이 아사오 지음 일어일문학과 근대사료 번역팀 옮김

출판일2023-01-15

쪽 수460

판 형

I S B N978-89-7581-861-5

판매가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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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04년~1910년간 대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일본인의 눈으로 관찰한 기록물

일제강점기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쓴 저서 가운데 당대 대구의 사회와 문화를 기록한 자료인『大邱物語』를 번역한 책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이 가와이 아사오가 1904년~1910년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그동안 일본인 연구 및 당시 한국의 역사, 문화사, 사회사, 인류학적 연구에 다수 인용되어왔다. 하지만 기존의 번역서는 원서의 상당 부분이 누락 되어 있고, 사료(史料)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번역되어 있지 않아 일본어를 모르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이 책은 이런 단점들을 모두 해소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대구 정착 과정, 당시의 문화, 사건과 사고, 지역의 인프라 구축 과정 등을 기술

저자인 가와이 아사오는 1904년 처음 대구에 온 이후 27년간 대구에 거주하며 대구가 근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한 일본인이다. 더욱이 대구에 기반을 둔 신문인 『조선민보사』창간의 주역이자 언론인이었기에 대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대구 정착 과정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제 정세와 한국의 정세, 일상 문화, 주목할 만한

사건과 사고, 지역의 인프라 구축 과정 등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일본인 식민자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기에 반드시 크로스체크가 필요하지만, 당시 지역문화 자료가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의 역사, 문화사, 사회사, 인류학 연구의 사료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총 11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별로 소제목을 두어 내용을 분류하고 구체화함.

이 책은 총 11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문에 장별로 소제목을 두어 내용을 분류, 구체화하고 있다. 번

역서에는 장에 번호를 부여했으며, 장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2장 저자가 대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3장-5장 일본인 민회가 성립되는 과정

6장-8장 근대적 생활설비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대구의 상황

9장-12장 전쟁과 일본인 이주민의 지역사회 정착 과정

13장-16장 대구의 제반 시설과 일본인의 경제활동

17장-20장 대구의 법과 행정 시행 실태

21장-23장 대구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상인들

24장-28장 대구 민회 운영상의 문제와 대구 지역신문 창간

29장-30장 대구 교육계와 학교시설 설립

31장-46장 대구에 잇달아 설립되는 각종 조직과 발전하는 우편, 통신, 금융

47장-55장 시가지 및 도로의 확충과 지방행정조직, 지방정치의 개혁

56장-69장 일본인 상업회의소의 설립과 민단 내 일본인들 간의 파벌 다툼 과정

70장-82장 국기사건, 헤이그밀사 사건, 황제 양위, 영친왕 유학 등 국제 및 한국 내 정치 정세와 대구의 민심

83장-89장 민장 선거를 둘러싼 일본인 사회의 불화

90장-112장 순종의 대구 시찰과정, 법원 설립, 유치원과 학교, 군대 주둔 등을 둘러싼 민관 협력 과정, 한일병합 이전까지 대구의 정세와 근대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어가는 과정

차례

1. 히타치마루 호가 조난된 현해탄을 건너다

   처음으로 대구에 오다

   빈대의 습격

2. 내가 대구인이 되기까지

   경제의 중심지

   부산까지 강행 

   대구인이 되다

3. 임시 역사와 인두세

   정차장 앞 풍경 거류민회 설립

4. 젊고 활기찬 민회

   신인들의 뛰어난 기량

   난무하는 철권

   시부사와 옹의 인상

5. 여순 함락을 전기로

   일본인 세력 신장

   대소변을 제멋대로

   개, 음경을 먹다

6. 비위생 백퍼센트

   거리의 생지옥

   천연두의 유행

   당시의 물가

7. 배일계 관찰사 배척의 불길

   대구실업신문

   이용익 관찰사 배격

   재류민의 기개

8.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던 대구

   일약 10부에 들어가다

   ‘大邱’를 발음하는 방식

   당시의 일본인 단체와 관공서

9. 이주시대의 가벼운 생활의식

   임시방편의 생활

   두루미와 꿩

10. 해이한 한국의 민요

     소의 태

     당시의 민요

11. 후시미노미야 전하의 대구역 통과

     대구의 개척자

     나의 상인 시절

     전첩축하회

     경부선 개통식

12. 일본해 해전과 당시의 추억

     일본해 해전

     당시의 바람

     나가이와의 추억

13. 달성산의 전설과 공원 경영

     달성산의 전설

     공원지로 공인

     공원 조성의 공로자

14. 최초의 일본인 회사와 민족성

     최초의 회사

     거짓 현판

     한국인과 국민성

15. 난맥이 극에 달한 당시의 화폐

     당시의 화폐

     일람불 어음

     말 귀에 염불

16. 거저먹는 세금징수 청부업

     대금업 횡포 시대

     경찰의 부재

     나카무라의 일화

17. 문란한 법제 치하의 행형

     황금만능 시대

     매 한 대에

     관문

     시장의 행형장

18. 서투른 사수로 인해 총살 재집행

     60여 명 교살 총살을 실제로 보다

     용병은 파락호

19. 뇌물이 횡행한 옛 한국시대

     해이한 민심 재판의 한 장면

     옥중 고통의 예 과거 형벌의 종류

     행복 향유 시대

20. 공부라고 생각하여 보게 된 행형

     냉담한 사형수

21. 만만치 않은 상인들 뿐

     사족 출신 상인들

22. 막과자 가게라도 이름은 무역상

     당시 내가 하던 장사

     복통의 묘약

23.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 새끼를 잡는 상술

     이상한 진열 방법 관리가 된 상인

24. 민단 개혁을 위해 쇄신회를 조직

     긴조의 풍모 이름뿐인 상점

     쇄신회의 활약

25. 25년 전의 선거 일화

     놀라운 사실 영사에게 소원장

26. 나의 주장 관철, 인두세 폐지

     하타모토의 방문 내 주장 관철

     새된 고함을 지르는 자

27. 신문과 신문인, 그 변천

     두 신문의 대립 신문과 신문인

     대구실업신보

28. 대구구락부에 모인 사람들

     대구구락부 관부연락선

29. 요람기의 대구교육계(상)

     바가지 쓴 하주 달성학교의 유래

     히자쓰키의 노력 야학교 설립

30. 요람기의 대구교육계(하)

     소학교의 기원 학생 38명

     민회의원 집단사직

31. 피나는 판매경쟁의 추억

     어용상인의 부수입 판매경쟁의 추억

32. 민심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의 실패

     새로운 화폐의 주조 탈곡기 배포 계획

     농사개량 실패

33. 급조된 사변사의 솔직한 이야기

     사변사의 추억담

     1등 영화관

34. 민심 악화, 빈번한 화적 조난

     빈번한 화적의 봉기 후지이의 조난

35. 유언비어 난무, 소방대 창설

     재봉 바늘로 봉합 서부소방조직

36. 무질서한 세상, 과수원 경영

     순사, 한판 당하다 대담한 시도

37. 이토 공의 첫 조난 사건

     한정책 확립 미나카이의 유래

38. 다사다난했던 1905년

     최초의 벽돌건물 의기양양한 일본인

39. 전승국민의 긍지, 팔조회 조직

     전승국민의 긍지 개척자들의 친분

40. 사은에 감사하며 갑진회 조직

     개척자들의 재회 갑진회의 취지

     대구의 약령시

41. 대구 명물의 하나 약령시

     대구의 약령시 객사파괴 반대

     약령시의 보존

42. 기업시대, 이와세 왕국

     보기 드문 한파 이와세 중심 시대

     여러 사업의 시작

43. 아리타 오토마쓰와 당시의 동포회

     아리타 오토마쓰의 등장 약방의 증가

     동포회 설립 경위

44. 이토 공의 에피소드

     통감부 개청식 경성의 첫인상

45. 문관의 무장적 제복시대

     일대 전기를 맞이한 경성 봉화군의 폭도

     연초업계의 변천

46. 초창기 대구의 금융기관

     대구농공은행 대구수형조합

     시변의 계산법

47. 대관병식, 러일전쟁 결산

     대구의 개선 축하 사절 파견

     박중양의 출세

48. 체신사업 경과와 전화개통

     집배하지 않는 우편 통신사무 통일

     시내전화 개통

49. 한국시대의 지방청 조직

     용빙 관리의 위풍 거만한 관찰사

     관찰부의 장대한 경관

50. 호사스러운 석빙고를 그리는 기념비

     말기의 관찰사 석빙고 파괴

     석빙고의 비명

51. 이사청 설치와 민단법 실시

     성대한 개청식 오카모토 부이사관의 답사

     재류민 또 소동을 피우다

52. 제반 행정개혁, 백화 일시에 피다

     소송대리업자ᅠ 한국기업공채

     교육기관 개선 재판소 제도

53. 민단법 실시와 소학교 건축

     민단 설립 위원 이와세의 분주

     대구농회 설립 요배전 낙성

54. 영남제일관과 바한센 이야기 ᅠ

     대구성의 유래 겁 없는 해적선

     삼포의 개항장 사이고 다카모리의 분노

55. 대구 분란의 근원, 도로위원회

     극비리에 파괴 정부의 불인가

     도로위원회

56. 도로위원회의 결의 불실행

     이와세파의 실책 완강한 이토

     당혹스러운 가게야마

57. 시가지 간선도로 첫 개통

     십자도로 개통 맹렬한 선거전

     회의소 개설

58. 엄선한 12명의 공인 후보자

     후보자들의 거주지 격렬한 경쟁

59. 유곽지 설정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

     민회의원 당선 제1회 회의

     유곽설치 반대

60. 3인의 동시 의원직 사퇴

     나의 고군분투 사키사카와 만나다

     3인 동시 사직 실패한 유곽지

61. 1906년부터 1907년까지

     불온한 밀칙 1907년의 대구

     우조에 대한 기억

62. 정면충돌한 견원지간

     폭력이 난무한 2차 술자리 태평양의 가교

     견원지간

63. 민회의원 최초의 보궐선거

     의원 보궐선거 오구라의 첫 출진

     한국 법제개혁

64. 일본인 상업회의소 성립

     상업회의소 의원선거 결과 이와세파의 적국

     민단성립 축하 대구 니시키좌 건축

     거류민단 데이

65. 대구의 큰 불과 농업 선구자

     북문 밖 대화재 대구농산시장

     대구농회 연혁 영농의 선구자

     스기타 데이치의 대구 방문

66. 전매국 공장이 설립되기까지

     지가 1평에 5전 남한연초회사

     고쿠료미야코 쌀의 원조

67. 경북 의료위생 발달의 도정

     국채보상회 후지나와의 주선

     대구자혜의원

68. 달성공원 기성회 조직

     위안 장소의 물색 기성회의 취지

     복권 발행

69. 공원 시설에 숨은 비극

     이상적인 유원지 미와의 품성

     내가 조사위원

70. 이와세 민장, 가게야마 조역 시대

     기성회의 해산 대구일일신문

     맹렬한 공격

71. 관공서의 정비와 그 인물

     관공서의 정비 성공한 경관

     박중양의 평남 전출

72. 국기사건과 그 시대의 사건들

     권상장 설치 야마지에 대한 기억

     일본적십자사

73. 히메지 51연대 수비 시대

     이충구 관찰사 대구묘포 개시

     역 앞 철도용지 전성기의 금정

     매우 험악해진 민심 제51연대

     대구 경주간 도로

74. 헤이그 밀사 사건과 정치 관계

     이완용내각 성립 밀사의 등장

     밀사 모두 실패

75. 송병준의 직간에 두려워한 대신들

     선수 친 통감 내각의 대책

     두려워하는 대신들

76. 황제 양위로 신협약 체결

     황제 대리 조칙 종로의 폭동

     신황제가 모든 정무를 맡다 새로운 협약

77. 대구진위대 해산과 피난 준비

     군대해산 조칙 갑자기 함성이 일다

     오구라의 불상

78. 폭도가 횡행하여 괴로운 양민

     극에 달한 약탈과 참극 직지사의 도적떼

     흥해의 참사

79. 위생시설과 화폐정리 시대

     구에 대표자를 두다 위생기관이 생기다

     유치원 설치 재무감독국장

     신화폐 보급 방법

80. 연호를 융희로 개원하다

     즉위식 미증유의 성대한 행사

     고귀한 악수 황태자의 귀환

81. 황태자 방문 중 두 황실의 친교

     회견 모습 증정품

     폐하의 깊은 생각

82. 영친왕의 유학으로 민심 동요

     하사금을 받다 이토 태자태부

     여단장 교체 민단, 위기로 무너지다

83. 고문정치에서 차관정치로

     국시 6개조 통감권한 확충

     경찰사무 통일

84. 성황을 이룬 천장절 봉축회

     재류민의 결합 천장절 축하회

     12여단 야회 부의 일치단결

85. 민장 불신임 결의로 가게야마 사퇴

     지정학교 문제 민장 불신임안

     의원도 사임하다

86. 민장 자리를 놓고 맹렬한 경쟁

     모리나가의 독무대 공민회가 생기다

     두 파의 인물들 보궐선거 종료

87. 건의안을 내고 민장 선거

     예산편성을 끝내다 의장으로 아사노 당선

     와타나베의 품성 건의안으로 선거

88. 민장 불인가로 논란 비등

     민단법 해석 불인가 지령

     오키타의 예봉 눈병 난 오키타

     이사관도 변명

89. 명확하지 않은 불인가 이유

     오키타 스테지로의 퇴한 처분 오키타의 퇴거

     민회의 대책

90. 우지노의 호적수 미카지리 옹

     군장님 군장님 우측통행 시대

     옹과 만주 들판

91. 재선된 와타나베 민장 인가

     민장 재선거 신문경영 곤란

     노사카에 대한 기억 후원자들

92. 박중양 관찰사 재차 부임

     회의소로 비화 기성회의 종언

     행정관의 이동 내무행정 개혁

93. 법원 개설과 관민 대간친회

     성대한 개청식 관민 대간친회

     민단법 개정

94. 대립하는 두 파의 신문 계획

     매우 순조로운 재정 신문사 이전

     공소원 부지 대구신보 계획

95. 합병 성립, 대구신문 발행

     박중양의 주선 조정자가 나타나다

     흔쾌히 합병 성립 합병 신문 발행

96. 기념해야 할 대구의 개척자

     법원부지 선정의 전말 마쓰모토가 걸어온 길

     세간의 건망증

97. 유치원 재흥을 위한 아름다운 연예회

     히시키의 언변 예기단속규칙

     유곽매수계획

98. 동척 창립과 관민 대간친회

     동척 창립총회 관민 대간친회

     박씨의 대연설

99. 추억 깊은 1908년

     의원 정기선거 의장선거 경위

     발행부수 400 언문부록 발행

100. 기유년 신년 연회의 추억

      성대한 신년회 동척의 한국진출

      편안한 생활

101. 황제를 봉영하는 미증유의 성사

      순행 조칙 장막천 매점

      각 숙소와 위원

102. 의장병을 선두로 장엄한 노부

      옥보를 남기다 원기 있는 이토공

103 별과 같이 열석한 귀현의 회합

      대환영회 광경 저녁 제등행렬

104. 대구에서의 이토 공 연설

      이토 공의 연설

105. 임행의 유물, 유일한 은사관

      환행과 대구 은사관에 대한 기억

      서북한 순행

106. 요란했던 육군기념일

      놀라운 행행 여담 흥청대던 3월 10일

      급조한 음악대

107. 무효투표로 재선거

      돌이켜보는 기념일 당시 있었던 일들

      무효투표 발견

108. 가속도가 붙은 발전 시대의 여러 일들

      교사를 다시 증축 관내의 일본인

      건원절 축전 도쿠라 조역 사임

109. 소네 자작의 대구 방문과 감세 문제

      납세부담 순위 경주와 소네 자작

      이사관 경질 3세 면제 운동

110, 임시한국파견대 설치

      다시 부회장 체제 대한일보에 대하여

      14연대 귀환

111. 발전에 공헌한 군대의 힘

      임시파견대 도착 환송, 환영회 광경

      개선과 공로자

112. 공적을 쌓고 명성도 얻었던 이토 공의 사망

      한국통감 경질 이토 공의 정책

      한국 정부에 하직을 고하다

113. 대구신문사의 분란

      노세에 대한 기억 이나모토의 책동

     경영 악화

114. 이해타산 없이 신문 경영

     독립경영 방침 위임에서 양도로

     일생을 신문에

· 역자 후기

· 인명색인

책속으로

대구는 예전부터 시장이 번성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음력 2일과 7일에는 서시(西市), 4일과 9일에는 동시(東市)가 열렸다. 서시는 현재의 시장우편소 전방 약 2천 평 일대에 있었고 동시는 현재의 달성군청 부근에 있었는데 서문시장이 1922년에, 동문시장은 1923년에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20-30년 전 한국에는 도읍이고 산촌이고 상설점포가 거의 없어서 일용품 및 기타 필수품을 한달에 여섯 번 열리는(읍촌의 시장은 모두 한달에 여섯 번 개시) 시장에서 구했으므로 시장을 쫓아 전전하는 상인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차츰 이주해 들어오면서 상설점포가 문을 열었으나 그럼에도 시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 모이기 좋은 곳이 번창했다. 그 무렵 본정(本町) 2정목(丁目)과 시장 부근이 경제의 중심지였다.

1904년 7, 8월 경에는 대구를 중심으로 철도속성공사가 한창이었다. 철도 종업원, 공사 청부업자와 그 직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상인, 여관, 요릿집 등이 일시에 격증하여 적어도 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모여 있었다.

저자소개

저자│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 (1879-1931)

오이타현 오이타시 출생. 1897년 무렵부터 상업에 종사하며 1904년 5월 대구로 건너와 무역과 담배 제조업을 시작으로 점차 대구지역 신문 발행에 관여하였다. 대구로 이주한 일본인 중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1907년 『대구일일신문』 후원을 시작으로 1909년 『대구신문』 사장, 1913년부터 사망 당시까지 『조선민보』 사장을 역임했다. 재직 중 『경북요람』을 발행하고 『대구물어大邱物語』 등을 저술하였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인 가와이 도시오河井戶四雄는 저자 사후 『조선민보』 사장이 되었다.

 

옮긴이│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근대사료번역팀

2021년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서 대구지역의 일본어 근대 사료를 번역하기 위해 근대사료 번역팀을 결성하였다.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최범순 교수, 윤경애 연구교수를 중심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대구의 일본어 근대사료를 번역해 나갈 예정이다.

윤경애, 김서진, 김유영, 성기훈, 심영재, 야마시타 아오바, 오창희, 요시무라 하루카, 이수민, 임동영, 전민지, 정수현, 정찬휘 옮김

서평

책소개

1904년~1910년간 대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일본인의 눈으로 관찰한 기록물

일제강점기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쓴 저서 가운데 당대 대구의 사회와 문화를 기록한 자료인『大邱物語』를 번역한 책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에 살았던 일본인이 가와이 아사오가 1904년~1910년간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그동안 일본인 연구 및 당시 한국의 역사, 문화사, 사회사, 인류학적 연구에 다수 인용되어왔다. 하지만 기존의 번역서는 원서의 상당 부분이 누락 되어 있고, 사료(史料)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번역되어 있지 않아 일본어를 모르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이 책은 이런 단점들을 모두 해소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대구 정착 과정, 당시의 문화, 사건과 사고, 지역의 인프라 구축 과정 등을 기술

저자인 가와이 아사오는 1904년 처음 대구에 온 이후 27년간 대구에 거주하며 대구가 근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한 일본인이다. 더욱이 대구에 기반을 둔 신문인 『조선민보사』창간의 주역이자 언론인이었기에 대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대구 정착 과정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제 정세와 한국의 정세, 일상 문화, 주목할 만한

사건과 사고, 지역의 인프라 구축 과정 등이 매우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일본인 식민자의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기에 반드시 크로스체크가 필요하지만, 당시 지역문화 자료가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의 역사, 문화사, 사회사, 인류학 연구의 사료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총 11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장별로 소제목을 두어 내용을 분류하고 구체화함.

이 책은 총 112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문에 장별로 소제목을 두어 내용을 분류, 구체화하고 있다. 번

역서에는 장에 번호를 부여했으며, 장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2장 저자가 대구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

3장-5장 일본인 민회가 성립되는 과정

6장-8장 근대적 생활설비가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대구의 상황

9장-12장 전쟁과 일본인 이주민의 지역사회 정착 과정

13장-16장 대구의 제반 시설과 일본인의 경제활동

17장-20장 대구의 법과 행정 시행 실태

21장-23장 대구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상인들

24장-28장 대구 민회 운영상의 문제와 대구 지역신문 창간

29장-30장 대구 교육계와 학교시설 설립

31장-46장 대구에 잇달아 설립되는 각종 조직과 발전하는 우편, 통신, 금융

47장-55장 시가지 및 도로의 확충과 지방행정조직, 지방정치의 개혁

56장-69장 일본인 상업회의소의 설립과 민단 내 일본인들 간의 파벌 다툼 과정

70장-82장 국기사건, 헤이그밀사 사건, 황제 양위, 영친왕 유학 등 국제 및 한국 내 정치 정세와 대구의 민심

83장-89장 민장 선거를 둘러싼 일본인 사회의 불화

90장-112장 순종의 대구 시찰과정, 법원 설립, 유치원과 학교, 군대 주둔 등을 둘러싼 민관 협력 과정, 한일병합 이전까지 대구의 정세와 근대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어가는 과정

차례

1. 히타치마루 호가 조난된 현해탄을 건너다

   처음으로 대구에 오다

   빈대의 습격

2. 내가 대구인이 되기까지

   경제의 중심지

   부산까지 강행 

   대구인이 되다

3. 임시 역사와 인두세

   정차장 앞 풍경 거류민회 설립

4. 젊고 활기찬 민회

   신인들의 뛰어난 기량

   난무하는 철권

   시부사와 옹의 인상

5. 여순 함락을 전기로

   일본인 세력 신장

   대소변을 제멋대로

   개, 음경을 먹다

6. 비위생 백퍼센트

   거리의 생지옥

   천연두의 유행

   당시의 물가

7. 배일계 관찰사 배척의 불길

   대구실업신문

   이용익 관찰사 배격

   재류민의 기개

8.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던 대구

   일약 10부에 들어가다

   ‘大邱’를 발음하는 방식

   당시의 일본인 단체와 관공서

9. 이주시대의 가벼운 생활의식

   임시방편의 생활

   두루미와 꿩

10. 해이한 한국의 민요

     소의 태

     당시의 민요

11. 후시미노미야 전하의 대구역 통과

     대구의 개척자

     나의 상인 시절

     전첩축하회

     경부선 개통식

12. 일본해 해전과 당시의 추억

     일본해 해전

     당시의 바람

     나가이와의 추억

13. 달성산의 전설과 공원 경영

     달성산의 전설

     공원지로 공인

     공원 조성의 공로자

14. 최초의 일본인 회사와 민족성

     최초의 회사

     거짓 현판

     한국인과 국민성

15. 난맥이 극에 달한 당시의 화폐

     당시의 화폐

     일람불 어음

     말 귀에 염불

16. 거저먹는 세금징수 청부업

     대금업 횡포 시대

     경찰의 부재

     나카무라의 일화

17. 문란한 법제 치하의 행형

     황금만능 시대

     매 한 대에

     관문

     시장의 행형장

18. 서투른 사수로 인해 총살 재집행

     60여 명 교살 총살을 실제로 보다

     용병은 파락호

19. 뇌물이 횡행한 옛 한국시대

     해이한 민심 재판의 한 장면

     옥중 고통의 예 과거 형벌의 종류

     행복 향유 시대

20. 공부라고 생각하여 보게 된 행형

     냉담한 사형수

21. 만만치 않은 상인들 뿐

     사족 출신 상인들

22. 막과자 가게라도 이름은 무역상

     당시 내가 하던 장사

     복통의 묘약

23.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 새끼를 잡는 상술

     이상한 진열 방법 관리가 된 상인

24. 민단 개혁을 위해 쇄신회를 조직

     긴조의 풍모 이름뿐인 상점

     쇄신회의 활약

25. 25년 전의 선거 일화

     놀라운 사실 영사에게 소원장

26. 나의 주장 관철, 인두세 폐지

     하타모토의 방문 내 주장 관철

     새된 고함을 지르는 자

27. 신문과 신문인, 그 변천

     두 신문의 대립 신문과 신문인

     대구실업신보

28. 대구구락부에 모인 사람들

     대구구락부 관부연락선

29. 요람기의 대구교육계(상)

     바가지 쓴 하주 달성학교의 유래

     히자쓰키의 노력 야학교 설립

30. 요람기의 대구교육계(하)

     소학교의 기원 학생 38명

     민회의원 집단사직

31. 피나는 판매경쟁의 추억

     어용상인의 부수입 판매경쟁의 추억

32. 민심을 이해하지 못한 정책의 실패

     새로운 화폐의 주조 탈곡기 배포 계획

     농사개량 실패

33. 급조된 사변사의 솔직한 이야기

     사변사의 추억담

     1등 영화관

34. 민심 악화, 빈번한 화적 조난

     빈번한 화적의 봉기 후지이의 조난

35. 유언비어 난무, 소방대 창설

     재봉 바늘로 봉합 서부소방조직

36. 무질서한 세상, 과수원 경영

     순사, 한판 당하다 대담한 시도

37. 이토 공의 첫 조난 사건

     한정책 확립 미나카이의 유래

38. 다사다난했던 1905년

     최초의 벽돌건물 의기양양한 일본인

39. 전승국민의 긍지, 팔조회 조직

     전승국민의 긍지 개척자들의 친분

40. 사은에 감사하며 갑진회 조직

     개척자들의 재회 갑진회의 취지

     대구의 약령시

41. 대구 명물의 하나 약령시

     대구의 약령시 객사파괴 반대

     약령시의 보존

42. 기업시대, 이와세 왕국

     보기 드문 한파 이와세 중심 시대

     여러 사업의 시작

43. 아리타 오토마쓰와 당시의 동포회

     아리타 오토마쓰의 등장 약방의 증가

     동포회 설립 경위

44. 이토 공의 에피소드

     통감부 개청식 경성의 첫인상

45. 문관의 무장적 제복시대

     일대 전기를 맞이한 경성 봉화군의 폭도

     연초업계의 변천

46. 초창기 대구의 금융기관

     대구농공은행 대구수형조합

     시변의 계산법

47. 대관병식, 러일전쟁 결산

     대구의 개선 축하 사절 파견

     박중양의 출세

48. 체신사업 경과와 전화개통

     집배하지 않는 우편 통신사무 통일

     시내전화 개통

49. 한국시대의 지방청 조직

     용빙 관리의 위풍 거만한 관찰사

     관찰부의 장대한 경관

50. 호사스러운 석빙고를 그리는 기념비

     말기의 관찰사 석빙고 파괴

     석빙고의 비명

51. 이사청 설치와 민단법 실시

     성대한 개청식 오카모토 부이사관의 답사

     재류민 또 소동을 피우다

52. 제반 행정개혁, 백화 일시에 피다

     소송대리업자ᅠ 한국기업공채

     교육기관 개선 재판소 제도

53. 민단법 실시와 소학교 건축

     민단 설립 위원 이와세의 분주

     대구농회 설립 요배전 낙성

54. 영남제일관과 바한센 이야기 ᅠ

     대구성의 유래 겁 없는 해적선

     삼포의 개항장 사이고 다카모리의 분노

55. 대구 분란의 근원, 도로위원회

     극비리에 파괴 정부의 불인가

     도로위원회

56. 도로위원회의 결의 불실행

     이와세파의 실책 완강한 이토

     당혹스러운 가게야마

57. 시가지 간선도로 첫 개통

     십자도로 개통 맹렬한 선거전

     회의소 개설

58. 엄선한 12명의 공인 후보자

     후보자들의 거주지 격렬한 경쟁

59. 유곽지 설정 문제를 중심으로 논쟁

     민회의원 당선 제1회 회의

     유곽설치 반대

60. 3인의 동시 의원직 사퇴

     나의 고군분투 사키사카와 만나다

     3인 동시 사직 실패한 유곽지

61. 1906년부터 1907년까지

     불온한 밀칙 1907년의 대구

     우조에 대한 기억

62. 정면충돌한 견원지간

     폭력이 난무한 2차 술자리 태평양의 가교

     견원지간

63. 민회의원 최초의 보궐선거

     의원 보궐선거 오구라의 첫 출진

     한국 법제개혁

64. 일본인 상업회의소 성립

     상업회의소 의원선거 결과 이와세파의 적국

     민단성립 축하 대구 니시키좌 건축

     거류민단 데이

65. 대구의 큰 불과 농업 선구자

     북문 밖 대화재 대구농산시장

     대구농회 연혁 영농의 선구자

     스기타 데이치의 대구 방문

66. 전매국 공장이 설립되기까지

     지가 1평에 5전 남한연초회사

     고쿠료미야코 쌀의 원조

67. 경북 의료위생 발달의 도정

     국채보상회 후지나와의 주선

     대구자혜의원

68. 달성공원 기성회 조직

     위안 장소의 물색 기성회의 취지

     복권 발행

69. 공원 시설에 숨은 비극

     이상적인 유원지 미와의 품성

     내가 조사위원

70. 이와세 민장, 가게야마 조역 시대

     기성회의 해산 대구일일신문

     맹렬한 공격

71. 관공서의 정비와 그 인물

     관공서의 정비 성공한 경관

     박중양의 평남 전출

72. 국기사건과 그 시대의 사건들

     권상장 설치 야마지에 대한 기억

     일본적십자사

73. 히메지 51연대 수비 시대

     이충구 관찰사 대구묘포 개시

     역 앞 철도용지 전성기의 금정

     매우 험악해진 민심 제51연대

     대구 경주간 도로

74. 헤이그 밀사 사건과 정치 관계

     이완용내각 성립 밀사의 등장

     밀사 모두 실패

75. 송병준의 직간에 두려워한 대신들

     선수 친 통감 내각의 대책

     두려워하는 대신들

76. 황제 양위로 신협약 체결

     황제 대리 조칙 종로의 폭동

     신황제가 모든 정무를 맡다 새로운 협약

77. 대구진위대 해산과 피난 준비

     군대해산 조칙 갑자기 함성이 일다

     오구라의 불상

78. 폭도가 횡행하여 괴로운 양민

     극에 달한 약탈과 참극 직지사의 도적떼

     흥해의 참사

79. 위생시설과 화폐정리 시대

     구에 대표자를 두다 위생기관이 생기다

     유치원 설치 재무감독국장

     신화폐 보급 방법

80. 연호를 융희로 개원하다

     즉위식 미증유의 성대한 행사

     고귀한 악수 황태자의 귀환

81. 황태자 방문 중 두 황실의 친교

     회견 모습 증정품

     폐하의 깊은 생각

82. 영친왕의 유학으로 민심 동요

     하사금을 받다 이토 태자태부

     여단장 교체 민단, 위기로 무너지다

83. 고문정치에서 차관정치로

     국시 6개조 통감권한 확충

     경찰사무 통일

84. 성황을 이룬 천장절 봉축회

     재류민의 결합 천장절 축하회

     12여단 야회 부의 일치단결

85. 민장 불신임 결의로 가게야마 사퇴

     지정학교 문제 민장 불신임안

     의원도 사임하다

86. 민장 자리를 놓고 맹렬한 경쟁

     모리나가의 독무대 공민회가 생기다

     두 파의 인물들 보궐선거 종료

87. 건의안을 내고 민장 선거

     예산편성을 끝내다 의장으로 아사노 당선

     와타나베의 품성 건의안으로 선거

88. 민장 불인가로 논란 비등

     민단법 해석 불인가 지령

     오키타의 예봉 눈병 난 오키타

     이사관도 변명

89. 명확하지 않은 불인가 이유

     오키타 스테지로의 퇴한 처분 오키타의 퇴거

     민회의 대책

90. 우지노의 호적수 미카지리 옹

     군장님 군장님 우측통행 시대

     옹과 만주 들판

91. 재선된 와타나베 민장 인가

     민장 재선거 신문경영 곤란

     노사카에 대한 기억 후원자들

92. 박중양 관찰사 재차 부임

     회의소로 비화 기성회의 종언

     행정관의 이동 내무행정 개혁

93. 법원 개설과 관민 대간친회

     성대한 개청식 관민 대간친회

     민단법 개정

94. 대립하는 두 파의 신문 계획

     매우 순조로운 재정 신문사 이전

     공소원 부지 대구신보 계획

95. 합병 성립, 대구신문 발행

     박중양의 주선 조정자가 나타나다

     흔쾌히 합병 성립 합병 신문 발행

96. 기념해야 할 대구의 개척자

     법원부지 선정의 전말 마쓰모토가 걸어온 길

     세간의 건망증

97. 유치원 재흥을 위한 아름다운 연예회

     히시키의 언변 예기단속규칙

     유곽매수계획

98. 동척 창립과 관민 대간친회

     동척 창립총회 관민 대간친회

     박씨의 대연설

99. 추억 깊은 1908년

     의원 정기선거 의장선거 경위

     발행부수 400 언문부록 발행

100. 기유년 신년 연회의 추억

      성대한 신년회 동척의 한국진출

      편안한 생활

101. 황제를 봉영하는 미증유의 성사

      순행 조칙 장막천 매점

      각 숙소와 위원

102. 의장병을 선두로 장엄한 노부

      옥보를 남기다 원기 있는 이토공

103 별과 같이 열석한 귀현의 회합

      대환영회 광경 저녁 제등행렬

104. 대구에서의 이토 공 연설

      이토 공의 연설

105. 임행의 유물, 유일한 은사관

      환행과 대구 은사관에 대한 기억

      서북한 순행

106. 요란했던 육군기념일

      놀라운 행행 여담 흥청대던 3월 10일

      급조한 음악대

107. 무효투표로 재선거

      돌이켜보는 기념일 당시 있었던 일들

      무효투표 발견

108. 가속도가 붙은 발전 시대의 여러 일들

      교사를 다시 증축 관내의 일본인

      건원절 축전 도쿠라 조역 사임

109. 소네 자작의 대구 방문과 감세 문제

      납세부담 순위 경주와 소네 자작

      이사관 경질 3세 면제 운동

110, 임시한국파견대 설치

      다시 부회장 체제 대한일보에 대하여

      14연대 귀환

111. 발전에 공헌한 군대의 힘

      임시파견대 도착 환송, 환영회 광경

      개선과 공로자

112. 공적을 쌓고 명성도 얻었던 이토 공의 사망

      한국통감 경질 이토 공의 정책

      한국 정부에 하직을 고하다

113. 대구신문사의 분란

      노세에 대한 기억 이나모토의 책동

     경영 악화

114. 이해타산 없이 신문 경영

     독립경영 방침 위임에서 양도로

     일생을 신문에

· 역자 후기

· 인명색인

책속으로

대구는 예전부터 시장이 번성한 지역으로 유명했다. 음력 2일과 7일에는 서시(西市), 4일과 9일에는 동시(東市)가 열렸다. 서시는 현재의 시장우편소 전방 약 2천 평 일대에 있었고 동시는 현재의 달성군청 부근에 있었는데 서문시장이 1922년에, 동문시장은 1923년에 지금의 장소로 이전했다. 20-30년 전 한국에는 도읍이고 산촌이고 상설점포가 거의 없어서 일용품 및 기타 필수품을 한달에 여섯 번 열리는(읍촌의 시장은 모두 한달에 여섯 번 개시) 시장에서 구했으므로 시장을 쫓아 전전하는 상인들이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차츰 이주해 들어오면서 상설점포가 문을 열었으나 그럼에도 시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 모이기 좋은 곳이 번창했다. 그 무렵 본정(本町) 2정목(丁目)과 시장 부근이 경제의 중심지였다.

1904년 7, 8월 경에는 대구를 중심으로 철도속성공사가 한창이었다. 철도 종업원, 공사 청부업자와 그 직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상인, 여관, 요릿집 등이 일시에 격증하여 적어도 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모여 있었다.

저자소개

저자│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 (1879-1931)

오이타현 오이타시 출생. 1897년 무렵부터 상업에 종사하며 1904년 5월 대구로 건너와 무역과 담배 제조업을 시작으로 점차 대구지역 신문 발행에 관여하였다. 대구로 이주한 일본인 중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1907년 『대구일일신문』 후원을 시작으로 1909년 『대구신문』 사장, 1913년부터 사망 당시까지 『조선민보』 사장을 역임했다. 재직 중 『경북요람』을 발행하고 『대구물어大邱物語』 등을 저술하였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인 가와이 도시오河井戶四雄는 저자 사후 『조선민보』 사장이 되었다.

 

옮긴이│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근대사료번역팀

2021년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에서 대구지역의 일본어 근대 사료를 번역하기 위해 근대사료 번역팀을 결성하였다. 영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최범순 교수, 윤경애 연구교수를 중심으로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대구의 일본어 근대사료를 번역해 나갈 예정이다.

윤경애, 김서진, 김유영, 성기훈, 심영재, 야마시타 아오바, 오창희, 요시무라 하루카, 이수민, 임동영, 전민지, 정수현, 정찬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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