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이야기’는 사랑을 가장한 정치, 혹은 정치를 가장한 사랑 이야기
이슬람 여성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정치를 주제로 한 바이런이 쓴 다섯 편의 작품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19세기 초 바이런은 다른 낭만주의 시인들과 달리 드물게 그리스, 알바니아, 터키, 발칸 반도 등 오리엔트 지역을 폭넓게 여행했다. 이를 기반으로 이슬람 세계 여성의 사랑과 좌절을 다룬 다섯 편의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작품의 기본얼개는 오스만제국을 무대로 동양 여성을 사이에 두고 이슬람 군주와 서양 남성의 욕망이 충돌하는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삼각관계의 사랑 이야기 속에는 오리엔트를 사이에 두고 진행된 식민과 피식민, 지배와 저항, 주체와 타자의 충돌이 구조화되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시대 오스만제국의 그리스 식민지를 중심에 두고, 유럽 열강들이 주도권과 패권을 차지하려는 각축전으로도 비유되기에 ‘오리엔트 이야기’를 정치적 알레고리로 보게 한다. 따라서 ‘오리엔트 이야기’는 사랑을 가장한 정치, 혹은 정치를 가장한 사랑 이야기이다.
사랑을 주제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지배와 저항 담론의 해체와 통합을 시도
이 책은 ‘이슬람 여성의 사랑과 죽음’이란 주제로 바이런의 작품에 대해 새로운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서양 문학의 타자로서 서양 작품을 읽고 해석하는 데는 분명 서구와 다른 문화적 관점이 있다고 보았다. 1장은 ‘오리엔트 이야기’의 첫 작품인 『자우르』를 분석하여 남성화자 중심의 서술이 어떻게 여성을 타자화했는지 살펴보고 있으며, 2장에서는 『아비도스의 신부』를 분석하여 줄레이카와 셀림의 비극적 사랑에 함의된 정치성을 밝혔다. 3장은 세 번째 작품인 『코세어』를 분석하여 코세어 콘래드와 이슬람 군주인 파사 세이드의 하렘 오달리스크 걸네어의 사랑을 통해서 단순한 사랑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4장『라라』에서는 남장 여자 칼레드의 순애보 사랑을, 5장『코린트의 공성』에서는 이제까지 오리엔트와 옥시덴트,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두 문명의 첨예한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공멸하는데 이는 이 책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결론이다. 다섯 작품에서 펼치는 이야기의 세계는 사랑을 주제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정치 주제, 즉 지배와 저항 담론의 해체와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섯 작품이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서로의 주석 역할을 함
오리엔트 이야기’는 당시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던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슬람 군주의 오달리스크나 홀아비의 딸을 가운데 둔 오리엔트와 옥시덴트의 갈등과 충돌을 다룬 다섯 편의 작품이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각 작품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와 독특한 정치적 담론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특징은 ‘오리엔트 이야기’의 각 작품이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서로의 주석 역할을 한다. 작품은 그리스의 일곱 섬 중 하나인『자우르』의 배경이 되는 모레아에서 시작하여『코린트의 공성』의 무대인 코린트에서 끝난다. 이러한 작품의 지리적 공간 은 쉽게 동서양의 갈등구조로 보게 한다. 그 갈등구조는 서양이 오리엔트를 바라보는 기호화된 전략을 이분법적 이미지들로 그려냄으로써 옥시덴트의 우월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오리엔트의 타자성을 통치체제, 성 풍습, 종교와 문화 영역에서 ‘중층적’으로 규정하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낭만주의 시인 중 바이런은 한국의 영문학 연구자들에게 외면당하는 경향이 있다. 시인에 대한 소논문은 여러 편 있으나 시인의 대표작인 『돈 주안』을 비롯하여 여타의 작품 관한 포괄적인 연구도 드문 상황에서 이 책의 출판은 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