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주의(空間注意)는 공간에 대한 하나의 단일한 주의(主意)를 주창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각자의 장소 체험이 상이한 위상에서 구성된 것임을 드러내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일관되지 않은 공간을 맥락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주의는 공간을 주의하고 전면화하는 이질적인 작업들이 만나는 경계 없는(border-less) 접경지대가 되고자 한다. 이때 접경지대는 각기 다른 토대와 스케일에서 발전한 공간에 대한 작업들의 논쟁이 펼쳐지는 전장이자, 동시에 그 전장에서 합의된 공통 방향의 총체적인 공간 생산을 위한 공동진지를 의미한다. _p.16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로 연속적이지 않듯 공간 역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곳이 시간이 펼쳐져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그게 어떤 알 수 없는 죄책감이나 으스스함, 새로운 다짐들을 불러일으킨다고 느꼈다. _p.23
일상의 규범이 작동하지 않는 공간은 방문자에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오히려 공간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방문자를 환대하지 않으며, 이전과 같은 방식의 관계를 맺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공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익숙하던 객체가 아니며 거꾸로 우리를 응시하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던져버린다. _p.28
결국 도시들의 사이 공간은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닌 곳, 동시에 경기-김포지만 경기-김포가 아닌 곳으로 남게 되었다. 여기에 어두운 지하의 수직적 비가시성이 레이어로 추가된 ‘사건’에서, 지방자치단체 간의 떠넘김의 혐의는 도리어 더욱 밝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_p.95
언젠가 누가 내게 정주와 정체의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둘 다 한곳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를 공유하지만, 나는 사회가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에 부흥할 수 있는지, 조절할 수 있는지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어떤 움직임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판단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이 사회가 제시하는 속도와 방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것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_p.113
그러므로 세계 열기란 메타게이밍과 함께 일어난다. 유의미한 메타게임의 수는 곧 유의미한 플레이 공간 계열체의 수이다. 이 계열체의 역사적 이름을 장르 혹은 장르로 환원되지 않는 몇몇 고유성을 달성한 게임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었다. 이 플레이 공간은 건축 가능한 세계인 동시에 우리 삶의 다른 범속한 세계와 마찬가지로는 다른 세계와의 협상과 조정, 투쟁이 일어나는 생태 속에서 구축할 수 있다. _p.121
그런데 문제는 당사자라는 사실만으로 행동의 정당성이 구성되는(것이라 믿는) 당사자주의 도시정치가 도시공간을 제각각의 영역으로 쪼개어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 본위의 논리에서는 모든 이들이 당사자로서의 권리를 가진 한정된 영역에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만을 도시공간의 정당화된 유일한 결정 주체로 선험적으로 특권화함으로써, 그저 ‘너도 맞고, 나도 맞는’ 상태로 서로 침범하지도 개입하지도 문제시하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영역으로 나누어진 도시공간은 제각각의 닫힌 영토로 상대화된다. _p.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