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쌓인 사진첩 투명 비닐 안에 박제된 기억 속 장소”
대구에서 나고 자란 저자에게 달성공원은 공통 분모다. 연령대가 같은 부부인 저자의 사진은 대부분 생일 등 기념일에 특정 장소에서 찍었고 풍경도 분위기도 비슷했다. 저자에게 달성공원은 기억 속 장소였고 서로가 달성공원에서 찍은 기념사진도 있었던 것. 이들은 오래된 앨범의 비닐을 벗겨 달성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떼어내면서 촬영한 장소와 시점 등을 비교한 뒤 직접 해당 장소로 나섰다. 달성공원의 정문 풍경과 입구 왼쪽 등 구체적인 위치를 비롯해 4살 꼬마의 키보다 작았던 사철나무가 어느덧 어른 허리춤 높이 정도로 자란 점까지 경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변화를 비교한 흔적도 담았다.
새벽시장으로 변신한 달성공원 앞 왕복 4차로
새벽녘 달성공원 앞에 반짝 나타나 갖가지 물건을 팔고 해가 뜨면 사라지는 시장이 저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형 마트를 비롯해 전통시장도 규격, 표준화하는 게 추세이긴 하나 달성공원의 새벽시장은 상인회장도, 점포도 없는 좌판 천지다.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누군가에겐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새벽일을 끝내고 퇴근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회식 장소이자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만물상인 곳이다. 어디선가 하루를 보낸 상인들과 손님들은 일제히 헤쳐 모여 막걸리며 어묵이며 닭강정에 파전까지 한껏 진수성찬을 즐기다 폐장할 때쯤이면 뿔뿔이 흩어지는 게 일상이다. 참깨부터 고추, 사과, 배 등 농산물을 비롯해 체스말, 생선, 주방용품, 골동품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도자기 등 없는 게 없다. 이들은 달성공원 앞 좌판에서 새 주인의 손길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다. 이곳을 찾는 연령대는 대부분이 50~60대로 많게는 80대까지도 출현하니 어르신들의 ‘홍대거리’이자 대구판 ‘동묘’인 셈이다. 이 같은 풍경은 저자의 아침잠을 깨우기도 했으나 진정 깬 것은 ‘기록해야겠다’는 저자의 의지였다.
사람 사는 세상, 익숙한 공간을 기록하는 마음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저자는 달성공원을 주제로 이야기를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감이 떨어져 의도치 않게 시간적 여유가 생긴 저자에게 ‘새로운 일’을 시작한 계기다. ‘무엇을 찍어서 보기 좋게 편집할까’라는 저자의 생각은 아주 사소한 것을 계기로 확 달라졌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과 길고양이, 산책로, 하늘을 뒤덮은 전깃줄 등 일상이라는 요소가 어느덧 영상으로 재탄생했다. 재개발 열풍으로 콘크리트가 하늘을 찌르고 그 이면에는 달성공원과 높아야 5층인 주택이 대비를 이루는 풍경이 현재 모습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드는 아쉬움과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바뀌기 전에 저자가 담고 싶었던, 어쩌면 담아야 했던 현재의 모습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