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비신(費信)이 정화 원정대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1436년 45개국에 대해 저술한 책
『성사승람(星槎勝覽)』은 명대 費信(1384~?)이 정화 원정대를 따라 제3차 항해(1409년), 제4차 원정(1413년), 제5차 원정(1416년), 제7차 원정(1431년) 등 4회 항해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1436년 저술한 책으로, 전집과 후집에 모두 45개국을 기술하고 있다. 비신이 기술한 나라들은 『명사』「정화 열전」에 보이는 나라들과 거의 일치하고, 그 수가 가장 많다. 특히 아프리카 동해안에 해당하는 지역은 『성사승람』에만 보인다. 15세기 초 정화(鄭和)의 원정을 따라간 통역관이나 관리 중에 마환은 『영애승람』, 비신은 『성사승람(星槎勝覽)』, 공진은『서양번국지(西洋番國志)』를 기록으로 남겼다. 『영애승람』보다는 비신의 『성사승람』이 훨씬 더 진솔하다. 『서양번국지』는 90% 이상이 『영애승람』과 같은 내용이라는 점에서 비신의 『성사승람(星槎勝覽)』기록이 15세기 초 중국의 '대항해' 정황을 더 근접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르코폴로와 이븐바투타, 정화항해도(鄭和航海圖)』 등을 고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
비신의 『성사승람』은 정화의 7차 항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보다 풍부한 기록을 보여주고 있기으며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武備志)』 권240에 실린 『정화항해도(鄭和航海圖)』를 고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또한 마르코폴로와 이븐바투타의 기록, 특히 소말리아와 아덴만 지역의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비신’은 기술한 나라마다 오언시로 내용을 정리하는 등 기록자로서 주관적인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3자의 가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고 상당 부분 이전 자료인 왕대연의 기록을 근거하고 있는데, 이는 비신이 해외 임무를 수행하면서 당시 가용한 선행학습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찬 사료나 '서양'을 기술한 자료에서도 마환의 기록보다는 비신의 『성사승람』이 더 많이 인용되고 있다. 나아가 비신은 자신이 직접 가본 곳은 전집에 넣었고, 직접 방문하지는 않았지만 전하는 기록을 참고하여 기술한 나라는 후집에 넣어 편집했다고 서문에 명확히 밝힐 정도로 솔직하다.
역주자는 비신의 기록을 검증하기 위해, 중국 자료보다는 가능한 동시대의 아랍과 유럽 자료를 소개하였으며, 천일각본을 토대로 보다 완전한 원문, 교감, 역주를 제시
현재 비신의 『성사승람』은 1937년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출간한 풍승균(馮承鈞)의 『성사승람교주』를 많은 학자들이 참고하고 있다. 풍 씨가 저본으로 삼은 것은 나이지(羅以智)의 필사본이고, 나이지가 베낀 저본이 천일각본이다. 두 판본을 비교해보면, 나이지가 천일각본을 비교 교감했다고 하지만, 천일각본의 정확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개악(改惡)의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의 역주자는 천일각본을 토대로 다시 풍 씨의 작업을 검증하여, 보다 완전한 원문, 교감, 역주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비신의 기록을 검증하기 위해, 중국 자료보다는 가능한 동시대의 아랍과 유럽 자료를 소개하려 했으며, 15세기 초 중국인들이 과연 자신들의 배로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렀을까 하는 문제에 답하려고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