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단일 성씨가 왕조를 이뤄 500년 넘게 지속한 국가가 몇 개나 있을까. 그리고 그 국왕과 가족들의 삶은 어땠을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나들이 삼아 한 번씩 들렸던 조선왕릉에서 저자의 뇌리를 스친 고민과 의문이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국왕이 있으나 안정적이지 못했고 왕좌를 놓고 벌어진 끊임없는 분쟁은 치열했다. 때로는 산 사람의 목숨을 위협했고, 죽은 사람을 상대로 파묘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은 왕의 무덤, 즉 왕릉이었다.
500년 역사를 걸으며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국왕 국가였다. 국왕의 무덤인 왕릉을 기준으로 삼아 500년 조선의 역사를 되돌아본 흔적이 책에 담겼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서 100리 이내 지역이 왕릉 자리로 선정된 점에 따라 왕릉은 주로 서울과 경기 고양, 남양주 등 수도권 일대에 포진해 있다. 태조와 정종의 능이 북한에 있는 점과 단종의 능이 영월에 있는 점 등을 제외하면 웬만한 왕릉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대규모 왕릉인 동구릉을 비롯해 가족 묘역인 서삼릉 등을 바탕으로 단종의 능인 장릉과 지명의 유래가 된 회묘(회릉) 등 조선 역사와 왕가의 가족사, 지역사까지 역사적 흐름을 한번에 짚어냈다. 이 과정에서 정통성, 논쟁 등 화제도 조명했고 폭정 속 효성, 출신 콤플렉스 등 소소한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등극부터 추존, 대한제국 선포와 망국에 이르기까지 왕릉 40여 기를 비롯해 세자묘 등 왕의 일족까지 답사한 저자의 심심한 소회가 나타난다.
비슷한 형식 속 발견한 차이
봉분을 보호하는 기능인 병풍석과 난간석 등 석물과 능의 형태도 저자의 일상 속 나들이에 포착됐다. 난간석과 유무에 따른 위계는 물론 병풍석과 석양과 석호, 문인석, 무인석까지 왕릉에 설치되는 석물의 종류와 비율, 크기 비교 등 특징도 함께 담아냈다. 전쟁과 국가방침 등으로 변형과 훼손이 확인된다는 점도 답사에서 얻은 차이점이다. 지난해 9월에서야 민간에 전면 개방된 서삼릉, 6·25전쟁 결과 총탄 흔적이 남아 있는 목릉의 석물, 일제강점기 수난을 고스란히 담은 효창원 등 커다란 봉분과 주위를 둘러싼 석물이라는 비슷한 모양에도 제각각 사연은 다르다는 것 또한 답사의 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