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니까’, ‘어려우니까’ 대신 새로운 이웃 개념을 제안하는 ‘이웃교육’
누구를, 무엇을 이웃으로 정의할지 기준이 크게 바뀌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지구 반 바퀴나 돌아가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는 현대사회. 옆집에 사니까 이웃 혹은 소외된 이웃과 같은 전통적인 이웃 명명(命名)은 더 이상 젊은 세대에 감흥이 없다. 교육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미래세대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들이 다양한 사회구성원과 공존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역량을 교육이 키워주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새로운 이웃을 발굴하고 또 누군가에게 스스로가 이웃으로 새롭게 자리하면서 자신의 삶과 연결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이웃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이웃교육은 시대적·사회적 상황에 따라 사안별로 보충되거나 추가되는 교육을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교육을 위한 관점이 될 수 있다.
읽어야 할 것이 넘쳐나는 시대의 난독증… ‘원래 인간의 뇌는 문자가 안 맞아’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읽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생필품을 살 때도, 약을 먹을 때도, 심지에 이제는 계란을 구입할 때도 깨알 같은 산란일자를 읽어야 한다. 진화론적으로 길게는 700만 년 전 인간 종으로 분화된 역사에서 인간이 읽고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00여 년 전부터다. 말하는 기능은 훨씬 이전부터 진화했으나 읽거나 쓰는 문자사용의 역사는 그야말로 최근이다. 인간의 뇌는 읽기를 담당하는 특정 뉴런 구조가 유전적으로 취약하고 그래서 누구나 읽기를 배울 때는 다른 두뇌 구조를 재활용해야 한다.
문자 중심으로 진행되는 교육상황에서 난독인이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상상 이상이다. 아동이 읽기를 배우는 발달 경로는 아동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고 보고되는 반면 제도권에서의 읽기 교육방식은 획일적이다. 난독학생의 고통이 갈수록 커져 간다.
인류사적으로 문자가 최근에 발명된 고급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난독증은 소수의 사람들만 겪는 특이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은 빛의 파장을 수용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얼렌증후군과도 연결된다. 빛을 받아들이는 개인차 그리고 문자를 터득하는 개인차는 우리의 일상과 교육현장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소통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까지 교육은 ‘뿔뿔이’, 해결책은 소통과 경청
이제껏 배운 많은 지식들이 모아지지 않고, 그렇게나 오래도록 배웠으나 사람들이 잘 섞이지 못하는 배경에는 지금까지 우리가 뿔뿔이 흩어진 교육을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육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전략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타인과 또 다양한 생명세계와 소통하고 경청하며 오늘에 이르는 정신문화를 일구어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유는 성공적인 공동체와 동의어’
인간 사회와 자연 세계는 상호 대척점에 있지 않다. 우리 각자는 언제 어디서나 모두와 관계 맺고 있다. 이웃교육은 다양한 개인이 공동체에 다양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새로운 연결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실천이다.
이웃교육은 인간을 포함하여 한 생명 한 생명의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거리는 이러한 자유로운 교류가 실현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웃교육은 기회의 교육이기도 하다. 거리에서는 서로가 이웃이 될 기회가 무한히 생성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문화의 거리’와 ‘일반 거리’가 구분되기 시작하고, 우리의 일상성은 상품화되기 시작한 것 같다. 다양한 일상이 살아 숨 쉬는 다양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
인공지능도 새로운 이웃, SNS에 인생맛집 대신 ‘인생흙’
다양한 생명체들의 공생의 과정 속에는 언제나 무수히 많은 비생명 존재들의 역할이 있었다. 생명 진화의 역사는 생물의 광물화 현상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 실존의 뿌리는 땅이다. 땅에서 비롯된 인간이 어느 순간 땅과 멀어지면서 흙은 추상 속 존재가 되었고 그 흙이 품은 수많은 생명체들도 인간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흙에 대한 상상력이 절실하다.
인간의 편안한 삶을 위해 만들어진 온갖 인공물들을 비롯하여 AI 역시 공진화 관점에서 새로운 관계 맺음이 필요하다. 지구생태계 안에서 AI와 조화로운 공생의 길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능 신화를 벗어나 AI를 공존지능으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교육인문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인문학을 융합한 분야가 개척되고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AI와 이웃이 되고 공존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AI인문학이 필요하다. AI인문학은 그 어떤 인문학 분야에서보다도 땅의 인문학이어야 한다. 땅에 대한 관심, 지식, 상상력이 새로운 언어를 만나야 한다. ‘인생맛집’ 대신 ‘인생흙’이 SNS 사진 주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