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가 화형에 처해진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비극이 아니다. 이 사건은 르네상스 인간 시대의 종말과 계몽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분기점이었다. 이후 유럽은 국경과 민족국가 체제가 확립되고 절대군주국가가 등장하는 격동의 시대로 들어섰으며, 정치·경제·사회·사상의 영역에서 근대의 토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바로 그 17~18세기 계몽시대의 사상과 예술을 새롭게 조망한다. 일반적으로 계몽주의는 인간 이성과 합리성을 통해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낸 긍정적 사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등장한 비판적 시각은 계몽주의가 오히려 절대주의 권력과 결합하여 새로운 지배 질서를 정당화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반된 평가 속에서 계몽주의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계몽시대는 한편으로는 이성과 과학, 진보를 주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군주국가와 결합한 권위주의적 질서를 낳기도 했다. 이 책은 계몽시대를 단순한 진보의 역사나 실패의 역사로 규정하지 않고, 그 속에 공존했던 보수와 진보의 긴장과 충돌을 함께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계몽시대를 대표하는 20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서로 대조적으로 배열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절대군주의 권위를 시각화한 화가 루벤스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화가 칼로처럼, 서로 다른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대비함으로써 계몽시대의 복합적인 성격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은 계몽주의가 낳은 근대가 어떻게 20세기의 비극과 함께 비판받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그 유산을 어떻게 다시 생각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서양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대와 계몽주의에 대한 반성이 진행된 반면, 비서양 사회는 여전히 근대화 모델을 추종해온 역사적 현실도 함께 짚는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성찰 속에서 자유·자치·자연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대안적 방향으로 제시한다. 이는 각각 인권·민주·생태와 연결되며, 궁극적으로 관용·다양성·평화라는 미래의 사회적 목표로 이어진다.
계몽주의는 이미 지나간 사상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적 유산이다. 이 책은 계몽시대를 단순히 찬양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그 복잡한 역사적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오늘 우리가 어떤 근대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